[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40) 라디오와 TV를 만든 '사노프'

입력 2016-11-04 20:14  

장원재 박사의 '그것이 알고 싶지?'

사노프, 권투를 최초로 라디오 중계방송
자기돈 들여 TV수상기 만들어 산업화해



천재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것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데이비드 사노프(David Sarnoff: 1891~1971)도 그중 한 사람이다. 러시아 태생인 이 사나이는 타이타닉호 덕분에 명성을 얻었다. 9세 때 미국으로 건너갔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소년 가장이 됐다. 신문팔이, 심부름꾼 등이 그의 소년 시절 직업이다. 독학으로 모스 부호와 무선 전신을 익히고 1906년 마르코니 무선 회사에 사환으로 들어갔다.

같은 주파수를 사용한다면

마르코니 무선 회사의 미국 지사가 설립된 해는 1899년이다. 2년 후 무선 기사가 된 사노프는 선박과 해안 방송국에서 근무하다 1912년 4월15일을 맞이한다.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날이다. 사노프는 7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당시 구조 작업 현장의 활동, 생존자들의 반응을 타전했고 생존자 명단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신문들이 사노프가 받은 무선 내용을 기초로 지면을 제작했다. 신문 이외에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주는 매체가 있다는 점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문명의 이기가 정보를 전할 뿐 아니라 인명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것이다.

1915년, 사노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지금도 원본이 남아 ‘사노프의 1915 메모’ 혹은 ‘라디오 뮤직박스 메모’라고 부른다. 동일한 무선 주파수를 사용한다면, 1 대 1 통신이 아니라 동시에 여러 명이, 불특정 다수가 수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통신회사에서 발신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차이가 없었다. 받는 사람이 수신기를 설치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이 아이디어의 혁명적인 부분은 ‘보내는 내용’에 있다. ‘1915 메모’에서 사노프는 음악을 송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보나 뉴스가 아니라 오락 기능을 담당하는 매스 미디어의 탄생이다. 그의 동료들은 이 아이디어의 잠재력을 몰랐다. ‘무선으로 음악이 나오는 상자에 어떤 상업적 가치가 있겠는가. 수신인이 특정되지 않은 메시지를 돈을 내가며 들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가 기록이 전하는 회사 안팎의 반응이다.

무선 라디오는 사기?

문제는 또 있었다. 당대의 고정 관념이었다. 1913년 리 드포레스트라는 발명가가 ‘무선 라디오를 독자개발’했다며 주주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는데, 미국 연방 변호사는 그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리 드포레스트는 오래 전부터 대서양을 가로질러 사람의 목소리를 紈徘?수 있다고 장담하며 여러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이것은 터무니없고 날조된 주장이다. 그의 주주들은 여기에 속은 것이다’라는 것이 당시 검사의 기록이다.

사노프의 아이디어는 여러 해 동안 후원자를 얻지 못했다. 그는 그의 아이디어의 가능성을 스스로 증명했다. 혼자 만든 수신기로 무선통신을 즐기는 애호가들을 상대로 사노프는 ‘인류 최초의 라디오 중계 방송’을 감행한다. 1921년 7월2일 미국의 잭 뎀프시와 프랑스의 조르주 카펜티에 사이에 벌어진 세계 헤비급 타이틀매치다. 그해에 벌어진 유일한 헤비급 세계타이틀전으로, 잭 뎀프시의 3차 방어전이었고, 카펜티에가 전쟁 영웅이라 미국과 유럽의 관심이 어마어마했다. 무려 10만명의 관중이 운집했고, 입장권 판매액이 100만달러를 돌파한 사상 첫 경기였다. 결과는 뎀프시의 4회 KO승. 이 자체 중계 방송의 청취자는 어느 정도였을까. 놀랍게도 미국에서만 30만명의 청취자가 ‘자체 제작한 수신기’로 사노프의 중계를 들었다. 그해 말, 라디오는 하나의 산업이 됐다. 수신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미국 전역에 송신소가 세워졌다. 사노프는 RCA라는 방송사의 사장이 되어 방송의 탄생과 발전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했다. 그는 라디오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미국 TV의 아버지’

‘1923년 메모’도 업계에 전하는 전설 가운데 하나다. 사노프는 TV의 탄생을 예견했다. 예견만 한 것이 아니다. 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하고 실험을 거듭한 끝에 1939년 세계박람회에서 TV 수상기를 선보였다. 사노프는 ‘TV라는 매체와 산업’ 자체를 만든 사람이다. 1944년 전미방송협회는 사노프에게 ‘미국 TV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선사했다. 라디오의 보급, TV의 등장, 컬러 TV의 방영은 오르지 사노프 개인의 공로다. 기술 개발뿐 아니라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보급하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그는 발명가와 경영자, 아이디어맨과 철학자를 겸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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